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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닥터컬럼

제목

미움받을 용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3.23
첨부파일0
추천수
3
조회수
1328
내용


그 아이가 온 것은 멈출 것 같지 않던 삭풍이 잦아지며 차가운 땅 위에서 노란 색 꽃무더기의 개나리가 언덕들을 감싸 안기 시작하는 이른 봄이었다. 온난화현상에 겨울이 따뜻해 질 거라는 우려에 동장군은 기분이 나빴는지 매서운 한파를 동반하여 무척이나 길게 우리를 떨게 했었다.


그 소녀는 큰 눈망울을 가진 귀여운 외모였는데 자리에 앉은 후에도 고개를 숙이고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가끔씩 그런 충동이 들면 억제하지 못해요. 그래서 제 몸을 그어버리는데 피가 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진정이 되고 몸이 따뜻해져요.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물론 다시 허전하고 우울해지지만요.’

17세의 이 소녀는 십여 회의 자해를 해왔으며 온 몸에는 베고 긋고 찌른 상처들이 있다. 부모가 아무리 야단을 치고 달래도 그치지 않았고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나에게 데리고 온 것이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너무 놀라고 안쓰러워했지만 이제는 괴물처럼 보인다고 한다. 이해가 가지 않고 진절머리가 나기 때문이다. 

 

자해를 하는 이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고 그 중 소아청소년들이 가장 많다. 자해는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OECD국가들 중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가장 높은 지가 꽤 되었다. 우울증의 이환률은 정신과치료의 조기개입이 늘어나면서 조금 줄어드는 추세이나 자해 시도율은 줄어들지 않고 요지부동이다.

왜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하니? 오늘 나도 물었지만 아이는 이런 질문을 숱하게 받아왔다. 자신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네가 피를 보면 마음이 진정된다고 했는데, 그럼 어떤 감정들이 진정이 되는 건지 같이 생각해 보자’

‘제 자신에게 화가 나는 감정들이 진정이 되어요, 친구들이 내 말을 무시하고 따돌리면 내 자신이 너무 한심스럽고 미워요.’

이 아이는 거절과 비판에 아주 민감했다. 상대에게 제대로 화를 내지 못했다. 그러면서 가장 만만한 자신에게는 분노를 터뜨리곤 하였다. 자신의 몸을 해치면서 말이다. 참 자존감이 낮은 아이라고 여겨졌다. 친구들과 갈등이 생길 때 자기변명과 주장을 하지 못해왔다. 상대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거나 부정했다. 돌아서서 자신이 바보 같다고 여겨지고 미워죽겠다고 느꼈단다. 이러한 자신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의사 아저씨도 공연히 헛수고 하시지 말라고 한다, 친절하게도.


자신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다고 했었던 분들이 생각났다. 아들을 잃고 가슴을 치며 자신을 원망하고 아무 낙이 없이 피폐하게 살아가던 한 어머니와 이년을 상담했었다. 이혼을 하며 자식들을 남편에게 뺏기고 일용직을 전전하며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던 여성은 참 아슬아슬했었다. 정신병을 오래 앓으며 어린애처럼 이기적이던 어머니를 둔 20대 여성은 사랑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며 자랐고 이제 어머니와 정신장애자들인 두 동생들을 책임져야하는 가장으로 살아가며 세상이 무섭고 가슴에는 외로움이 차오른다고 했었다. 내가 있는 몇 평의 이 공간은 마음이 여려서 아픈 분들이 가슴을 부여잡고 편견의 문턱을 넘어 와 절절한 마음을 토로하는 곳이다. 가슴이 답답해질 때는 창문 밖의 파란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 밑 어느 양지바른 곳에 피는 봄꽃들이 보고 싶어진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아이처럼 자존감이 바닥까지 추락해 있는 경우는 과거에 상처들이 많은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유아기 시절에 자신과 타인에 대한 기본 애정과 신뢰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 걱정된다. 자신이 충분히 사랑받을만한 존재라는 것이 가슴 속 깊은 토양에 심어지지 못했을 수 있다.

어머니는 큰 딸인 이 아이에게 애증이 많아 보였다. 첫 애로서 사랑을 많이 주었는데 3살 터울의 여동생이 미숙아로 태어나면서 어머니의 관심은 둘째에게로 쏠렸다. 그 뿐 아니라 언니로서 심신이 허약한 동생에게 배려와 양보를 하도록 훈육을 하였다. 둘째가 체격이 작지만 발달은 정상적이었고 건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둘째에게 애가 쓰였다. 둘에게 똑 같이 대하려고 노력한다고 스스로 자위했지만 자매가 싸웠을 때 혼나는 것은 언니였다. 이럴 때의 사나운 어머니의 말투와 표정을 대하며 맏이는 상처를 받으면 주눅이 들었다. 가슴에 맺히는 억울함으로 인한 분노는 동생을 괴롭히는 것으로 발산되었고 이는 더욱 아이를 문제아로 고착시키고 악순환이 되었다.


아이가 선택한 것은 투쟁보다 말문을 닫고 방문을 닫는 것이었다. 가족들과 마음을 닫은 아이에게 친구들은 마지막으로 남은 소중한 존재이기에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자신을 싫어할까 쩔쩔매면서 만만한 자신을 체벌하였다. 갈등이 생기고 자신이 한심할수록 몸에 새기는 상처들도 늘어났다.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마음은 수도 없이 들었지만 아파트 옥상에서 너무 무서워 차마 뛰어내리지 못했다.


어느새 동산위의 샛노란 개나리들의 물결들이 다른 봄꽃들에 밀려났고 짧은 봄에도 많은 꽃과 나무들이 앞 다투어 피었다. 정원에 심어진 봄꽃들과 달리 들과 산의 야생화들은 척박하게 언 땅에서 죽었다가 봄에 다시 살아났다. 항상 아래를 향해 내려다보는 적자색의 할미꽃, 홑겹으로 가냘프게 봄의 기운에 몸을 부르르 떨며 하늘거리는 씀바퀴, 들녘의 아지랑이와 함께 나른하게 춤추는 제비꽃 등은 정해진 곳이 없이 여기 저기 산야의 틈바구니에서 피어났다. 가까이 다가가 예쁘고 가녀린 꽃잎들과 하늘거리는 줄기를 만져보면 이렇게 약한 생명들이 차가운 땅을 뚫고 거친 잡초들 사이에서 올라오는지 참으로 신기하였다.


잡초보다 자신을 더 하찮게 여기던 위태로운 소녀는 조금씩 밝아졌다. 그동안 끊어질 듯 치료를 아슬아슬하게 이어나가던 아이는 짙어지던 신록이 더위에 익숙해질 무렵 이제는 병원에 오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고 자존감도 올라오게 되었다.

“어렸을 때 억울하여도 가만히 있었던 제 자신이 미웠어요. 그래서 상처입고 아파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자해를 하면 나를 혼낼 수 있고 미운 사람에 대한 화도 풀려요.”

자신의 몸을 공격하여 강렬한 감정을 발산하지만 소녀는 도움을 요청하여 갈등을 해결할 줄 모르고 회피하기만 하였다. ‘파국적인 생각’과 ‘좁은 시야’라고 하는 인지의 오류가 굳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더라도 결국에는 더 안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과 상황을 파악하고 판단하는 것이 왜곡되어 있는 것이다. 더불어 감정표현불능증이 있어 자신의 절절한 감정을 상대가 공감하도록 표현하지 못하여왔다. 자기효능감이 너무 낮아 상황을 개선할 자신감이 바닥의 수준이다. 

 

자신만의 구급상자를 만들기로 하였다.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사람들의 전화번호, 사진, 좋아하는 음악시디, 아끼는 편지와 책, 자신이 자랑스러웠던 증거들, 용기를 주는 추억의 물건 등 ‘보물들’을 선택하여 상자에 넣었다. 자해를 하고 싶을 때 이 상자를 열어서 너 자신을 구원하자고 하였다. 상자 안에 있는 물건들이 너의 마음속에 구석에 움츠리고 있던 자산들이니 이것들에 생명을 불어넣자, 그렇게 하면 파국적인 생각들이 부서진다고 하였다. 자기에게 처음으로 소중한 것들이 생기고 허전한 마음이 빛나는 자산들로 채워질 때 아이는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하였다.

아이는 나처럼 영화를 좋아하였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하였다. 아이들과 함께 책상 위에 올라 새로운 시야를 가지라고 했던 ‘오 캡틴 마이 캡틴’, 키팅 선생님은 너.목.내.를 강조하였다. 너의 목소리를 내어라. 너를 짓눌리는 것들에 괴롭다고 저항을 해라. 네 삶을 살아라. 라며 키팅의 열정에 같이 빠졌을 때 그 아이의 눈빛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자해를 하지 않게 된 것은 매순간 올라오던 그 자괴감에 아이가 휘둘리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공허하고 허전한 들판이었을 때는 그 감정이 폭풍으로 다 쓸어버렸지만 내면이 자기애의 나무로 숲을 이룬 지금은 위태로운 감정들이 덮쳐도 무너지지 않았다. 의연해진 아이의 얼굴은 빛이 나며 반짝거렸다. 이런 변화를 성취하면 가족과 소통이 나아지고 친구들은 더 많이 모여든다. 이러한 선순환의 흐름을 타 본 아이는 앞으로 자신의 몸이 미워 보이지 않으리라. 이제는 미움을 받을 용기를 가졌기에 그렇다. 사람들이 자신을 미워하여도 덩달아 스스로 자신을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의연히 살아나가면 그 미움도 눈 녹듯이 사라질 것을 믿을 것이다.


진료실에서 아픈 사연들을 전쟁처럼 겪고 나면 평화가 찾아온다. 약하고 귀여운 아이들이 쉽게 잘 자라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 속내를 보면 상상하기 힘든 고통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마치 쉽게 피어오른 듯이 보이는 산야의 야생화들이 언 땅 밑에서 치열하게 가녀린 몸을 일으켜 세우며 그 자리를 지켜내는 것처럼. 어쩌면 이들은 화려한 꽃과 부드러운 잎들을 보여주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저 자신의 존재를 지켜내는 것이 최고의 아름다운 가치이니까. 다시 봄이 왔다. 이제는 지천에 피는 봄꽃들이 예사롭지 않다. 그 아이들이 예전의 그 자리를 지켜내고 다시 꽃봉오리를 올렸는지 살펴보러 가야겠다. 기쁘고 대견해 할 설레임이 벌써 뭉실뭉실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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